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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bster

W.아츄(@dq_bh9)

 호텔 객실에 비치된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끝없이 들리다 결국엔 자동 응답기로 넘어간다. 욕실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테이프가 돌아가다 멈추는 소리, 아주 짧은 목소리로 어디냐 묻는 남자의 목소리. 자동 응답기에서 부재중 음성이 5개 기록돼 있다는 음성이 울려 퍼진다. 이윽고 욕실의 문이 열리고 나체의 남자가 수건을 머리에 올리고는 물기를 닦으며 호텔 객실로 모습을 드러낸다. 창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얀 피부는 열기에 적당히 데워졌다. 몸의 선단 끄트머리에서 아직 채 닦아내지 못한 물기가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남자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아내리다 아무 것도 없는 객실 창 너머를 응시했다. 남자의 객실은 1층이기에 창밖으로는 낮은 나무 몇 그루가 덩그러니 보일 뿐이다. 아날로그 벽시계가 초침과 분침을 움직이며 정각 오후 1시가 됐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과 동시에 남자의 앓는 비명이 들렸다. 남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한 번, 두 번. 남자의 머리카락이 다 마를 때까지 추락한 남자의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들 것을 가져온 호텔 직원의 손에 의해 남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졌다. 아름답게 꾸며진 호텔의 정원 돌바닥은 자살을 시도한 남자의 피로 흥건하다. 무표정하게 몸을 닦아낸 남자는 호텔 가운을 입고 전화기의 자동 응답기 버튼을 누른다. 

어디야? 

어디냐고. 왜 전화 안 받아.

오늘 점심 때 만나기로 한 약속 잊으면 안 돼. 기다릴 거야. 네가 오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야. 진심이야. 

보고 싶어. 

 네 방이 132호였지. 나는 532호야. 내가 내 방에서 떨어진다면 네 창문 앞에서 죽어가겠지. 재현아.

 신재현은 자동 응답기 속 남은 메시지를 전부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재현의 기억 속에 저 남자는 지금 5번째 같은 짓을 반복해 저 자리에서 죽어갔다. 바보 같은 남자였다. 한 번도 받아준 적 없는 신재현에게 미련하게도 목숨을 걸며 애정을 갈구하는 바보 같은 남자였다. 신재현은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곧 피범벅이 돼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마지막 모습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역겨움을 떠올리며 좁은 탁자 위 물병에 손을 올렸을 때 스피커에서 징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지는 여성의 음성. 

사냥 시간입니다. 

 신재현은 물병에든 물을 유리잔에 옮겨 따르며 테이블 위에 잘 진열된 마취 총알을 응시한다. 이 호텔의 규칙 중 하나. 커플이 되길 포기해 호텔을 벗어난 외톨이를 잡아 오면 주어진 체류 시간에서 하루가 추가된다. 외톨이 한 명에 하루의 시간. 그리고 모든 날을 소진하면 호텔의 규칙에 의해 처음 요구한 동물이 된다. 신재현은 처음 이 호텔에 왔을 때는 노란 색의 리트리버를 요구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그리고 그 횟수가 추가될 때마다 이제는 요구하는 동물이 점차 달라지다 결국엔 랍스터에 이르렀다. 랍스터요. 피가 푸른색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호텔 담당자는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은 이 모든 결말이 지겨워져 호텔을 빠져나와 외톨이 집단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외톨이 집단. 그들은 이 세계에서 뿌리 깊이 자리한 유성애를 부정하는 일종의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그들은 특정한 지역에서 생활하지 않고 끝없이 보금자리를 옮겨 다니며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외톨이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이었다. 신재현의 과거 회차 중 한 번은 그 외톨이 집단의 수장인 류건우를 만난 적 있다. 류건우가 수장인 외톨이 집단은 그 어떤 외톨이 집단들 중에서도 생존력이 뛰어났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호텔의 사냥 집단에 당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외톨이의 가장 큰 규칙인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집단보다 단호한 징벌을 내리기로 유명했다. 신재현은 그 많은 외톨이 집단 중 류건우의 집단에 들어가게 된 일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신재현은 수많은 회귀 중 단 한 번도 사랑을 이뤄 호텔을 빠져나간 적이 없다. 매번 신재현은 동물로 변하는 방에 들어가 암전된 후 다시금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 그 시간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니 외톨이 집단에 들어간다고 해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꼭 그래야만 했다. 처음 정해진 호텔의 체류 시간 마지막 날이 됐을 때 이번은 호텔의 체류 시간 보다 긴 인생을 살게 됐음에 안도하고 있을 무렵. 신재현은 뒤돌아서서 토끼의 가죽을 벗기고 있는 류건우를 보게 됐다. 달조차 없는 늦은 밤이었다. 내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뿐인 그 모습을 가만히 훔쳐보던 신재현은 자신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토끼의 목덜미에 칼을 밀어 넣고 가죽과 살코기를 발라내는 그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 무표정한 얼굴과 안경에 가려진 모호한 눈빛에 신재현은 그 안경을 벗겨내고 입술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건 일종의 사고와 가까웠다. 이번에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이 섣불리 찾아와 저지른 사고였다. 생각을 생각만으로 그치지 못하고 손을 뻗어 류건우의 안경을 벗겨내고 그의 메마른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추었다. 짧은 입맞춤이 끝난 후 류건우는 처음으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재현은 자기 죽음을 선명하게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느낀 사랑에 충동적으로 한 입맞춤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긴다는 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신재현은 이번에 틀렸다는 걸 깨닫고 그대로 숲을 달아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규칙을 중요시 여기는 류건우는 자신을 안타깝게 생각하더라도 규칙대로 벌을 주겠지. 그리고 그 벌은 신재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자신을 밀쳐내지 않은 류건우의 몸도 온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게 신재현은 다시 호텔로 왔다. 하지만 사냥 시간에 맞춰 외톨이 집단을 마주하려 노력했지만 류건우의 흔적이나 소문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애당초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신재현은 총알이 장전된 총과 간단한 보호구만 챙긴 채로 작은 버스에 탔다. 덜컹거리는 버스에는 금방 전 들것에 실려 간 남자의 빈자리가 보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 누구도 신재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호텔에 체크인을 할 때 신재현은 호모섹슈얼을 선택했으니 버스 안에 탄 사람들 역시 모두 같은 성향의 남자들뿐이었다. 그들 중 모두가 과거에 신재현과 한 번씩은 말을 섞거나 혀를 섞어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신재현은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이지만 신재현의 시간은 언제나 차고 넘쳤다. 그 긴 시간 동안 반복해도 이 호텔에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지 못했다는 건 류건우를 다시 만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의미로 귀결됐다. 한 달. 처음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 부여 받은 시간은 고작 한 달이었고 지금 신재현은 이 호텔에서 일주일째였다. 그리고 외톨이를 잡아 추가로 부여 받은 시간은 무려 40일이나 됐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신재현은 외톨이 사냥에서 40명의 외톨이를 잡아 이 호텔에 바쳤다. 류건우라는 존재가 더 이 근처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그 시점부터 모든 것이 이뤄졌다. 총을 쏴 본 적 없던 손은 이제 점점 총에 능숙해진다. 한 때는 자신 역시 외톨이였으니 그 누구보다도 외톨이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매정한 사냥꾼. 같은 버스를 탄 남자들은 신재현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류건우가 외톨이 집단을 만들지 않거나, 못했거나. 그 모든 결과로 류건우는 이 호텔에 다시 올 테니 신재현은 최대한 오랜 기간 이 호텔에 머물러야만 했다. 

 겨울이 된 숲은 매우 춥다. 외톨이들은 추위에 발이 굳어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 신재현은 차가운 눈동자로 숲 깊은 곳으로 도망치는 외톨이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자신이 사냥한 외톨이들 중 몇몇은 류건우의 외톨이 집단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류건우를 만나지 못했다는 건 자신에게도 큰 위안이 됐다. 너도 운이 없었구나. 신재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외톨이 사냥에 대한 정산까지 모두 끝난 후 호텔로 돌아온 신재현은 커다란 버스 하나가 호텔 문 앞에 당도한 걸 보았다. 새로 온 호텔 손님들. 그 무리 속에서 신재현은 처음 보는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자신보다 조금 작은 체구에 조금은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안경은 쓰지 않았고 행동거지도 류건우와는 조금 달랐지만 여태 경험한 모든 회귀를 돌이켜봐도 그 남자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겪는 이변에 신재현은 그 남자를 만날 날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재현의 반경 안에 그 남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호텔에 체크한 그 남자는 체크인 시에 성적 성향을 묻는 말에 헤테로 섹슈얼을 선택했다. 바이 섹슈얼은 관리상 문제로 더 서비스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은 후에 일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박문대. 호모섹슈얼과 헤테로섹슈얼이 같은 공간을 쓰는 건 외톨이 사냥 때 뿐이다. 신재현은 때를 기다렸다. 

나는 거기서 신재현을 만났다. 후에 신재현이 말하길 자신은 꽤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종일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우비를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톨이를 사냥하러 사냥꾼을 실은 차가 숲에 도착하자 숲에 터를 잡은 외톨이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사냥꾼이 온다. 혼자 살아남는 걸 선택한 외로운 자를 벌하러 온다. 합법적인 인간 사냥. 이 사냥을 좋아하는 특이 취향도 분명 있다. 그들은 끝없이 외톨이를 사냥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호텔 생활을 홀로 즐기곤 했다. 나는 주어진 내 몫의 총을 들고 흙탕물이 된 바닥을 조용히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한 때 나의 동료였던 이들의 뒷모습에 총을 겨누는 건 영, 입이 썼다. 하지만 호텔 관리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 일부러 빗맞히려 노력하는 것도 일이다. 우비가 빗물을 다 막아주지는 못했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눈 안으로 들어와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잠깐이었던 어둠이 사라지자 내 눈앞에는 그가 있었다. 

 한 방.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외톨이의 몸이 앞으로 푹 쓰러졌다. 그 남자, 그러니까 신재현은 차가운 얼굴로 쓰러진 외톨이의 몸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사냥감임을 표시하고는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빗물로 뚝 떨어진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차가운 표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얼굴은 꼭 얼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얼굴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날 처음으로 회귀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그의 죽음이었으니까. 시기상으로는 벌써 외톨이 집단에 합류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역시 류건우를 찾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장전된 총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류건우의 몸보다 이 몸은 작았고 또 약했다. 늘 제 몸처럼 다루던 총은 이 몸에 과분하게 커서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신재현은 차가운 눈으로 나의 모습을 위, 아래로 훑었다. 

“우리 만난 적 있나요? ”

 그의 우비 한 구석에 달린 이름표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이 호텔에 헤테로섹슈얼로 들어온 게 아니다. 나는 미간을 좁힌다. 우리에겐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아뇨.”

 우리는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편이 좋았다. 나는 다음 주 즈음에 이 호텔을 벗어나 다시금 외톨이 집단을 만들 생각이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나요? ”

 하지만 신재현은 끈덕지게 들이댄다. 외톨이 집단에서 그는 최대한 말수가 없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와 류건우의 몸으로 키스를 해서? 나는 왜 그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입맞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죽음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추워요?”

 그는 나에게 물으며 고개를 옆으로 슬며시 젖히곤 웃었다. 말이나 행동거지를 봐서는 어떤 위협도 악의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학습된 공포심이 밀려오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분명 저 얼굴은 호텔 내에서 고백을 제법 받았을 법 하다. 그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의 얼굴이 내 얼굴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무슨 생각 해? 그의 눈빛이 그렇게 나에게 물어왔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곧 호텔 관리자들이 호출 호루라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신재현이 퍽 아쉽다는 눈빛으로 나와 숲 입구를 번갈아 보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굳은 살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손이다. 금방 전 능숙하게 보여준 사격 실력이 거짓말이라 느껴질 만큼.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봐요. ”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얼음처럼 차가워만 보이던 색에 비해 손은 무척 따스했다. 신재현은 내 손을 꼭 붙잡은 후 두어 번 가볍게 흔들곤 미련 없이 숲 입구를 향해 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그가 가는 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와 악수를 한 손을 들어 빗물에 젖은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의 살이 닿았던 손에서 무덤가 흙냄새가 났다. 

 신재현을 처음 만났던 건 지금처럼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호텔에서 도망친 사람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는 한때 모두 그 호텔에 숙박했던 사람들이니까. 신재현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리고 음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우울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관여한다는 건 또 다른 불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모른 척 해야만 했다. 애정뿐만이 아니라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도, 하물며 타인의 감정에 동조하는 것마저도 우리는 경계했다. 사랑은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집단에서 몇 명의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집단에서 고립돼 죽거나 혹은 또 다시 도망치는 외로운 길을 택했다. 

 언제부터 신재현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됐는지 그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 처음 집단에 들어왔을 때 규율을 설명한 건 나였다. 하지만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나는 그의 시선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 잡은 토끼를 손질하고 있었던 그 날이 유일했다. 그의 시선을 느꼈던 건. 그의 시선은 꼭 날카롭게 깨진 유리 같이 투박하고 날카로운 면이 있어서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너무나 잘 느껴졌다. 처음엔 칼을 쥐고 있는 손목, 그다음엔 토끼의 피가 묻은 손가락 끝, 그다음엔 토끼의 시체를 보다가 곧장 내 얼굴로 향하는 그의 시선. 그 시선은 아주 오래도록 내 얼굴에 고정됐다. 하지만 얼굴의 한 곳만은 절대 향하지 않았다. 나의 눈. 절대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것이 유일한 죄를 마주하는 일인 것 마냥. 

 사랑은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면 충분했다. 

 그날 밤 신재현은 내가 묵은 숙소 건물로 찾아왔다. 1층에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자 신재현은 아직도 비 내리는 겨울 한 중간에 서 있었다. 빗물이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처럼, 얕고 좁은 소리가 반복해서 유리창을 울렸다. 나를 찾고 있다기 보다는 여기에 자신이 있음을 알아달라는 것 마냥. 나는 어둠 속에서 밖을 본다. 그의 눈은 지금 나를 보고 있지 않다. 류건우의 머리 뒤에서 류건우의 얼굴을 훔쳐보던 신재현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자꾸만 그때의 신재현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창문 앞으로 다가간다. 그의 숨이 하얗게 창에 서린다. 내가 창 앞까지 와 있다는 걸 알아도 그는 먼저 창문을 열지 않는다. 나 역시 먼저 창문을 열어주길 원하는 그의 기대를 외면한다. 우리는 한동안 얇은 창문을 앞에 두고 대치했다. 왜 헤테로를 선택했어? 그와의 입맞춤에 흔들린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 들리나요?”

 그가 바람 앞에 떨리는 유리창처럼 웃었다. 

“예.”

 하지만 나는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 서 있는 목석처럼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손끝을 바라봤다. 한 번이면 되는데. 그때처럼 한 번이면 저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창문은 잠겨 있지 않다. 늘 열리길 바라왔던 창문이다. 

“말 하고 싶은, 그런 게 있어서 왔어요. 물론 이런 말 하는 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헛소리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잠시만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

 혹시라도 그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 같은 게 나올까 싶어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난 신재현이 사랑을 운운하는 일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도 그 날처럼 죄를 앞에 둔 사람마냥 내 눈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았어요. 그 사람도 당신처럼 말하고 행동하곤 했죠. 근데 이상하죠. 그 사람과 당신은 이름도 외모도 전부 다른데, 이상하게 계속 그 사람을 보곤 해요.”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듣고만 있어 달라는 말처럼 내 침묵에도 이어서 말했다. 

 “이상하죠. 몇 번이나 이 호텔에 왔어요. 나는. 몇 번이나 동물로 변하는 방에 들어가고 거기서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뜨면 다시 호텔에 체크인을 했죠. ”

 이상한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어떤 건지 지금의 나는 경험해봤으니 어렴풋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에게 나 역시 돌아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전에 봤던 그 사람을 계속 찾고 있어요. ”

 누군지 알 것 같다.

“혹시 당신이 알고 있나요. 류건우라고. ”

 그 류건우가 나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아. 이런 제가 좀 이상하고 미친 것 같죠? 호텔 직원에게 말해도 어쩔 수 없다고 각오하곤 있어요. ”

 호텔 직원에게 이 상황을 말해서 처벌 받는다고 한들 그는 다시 이 호텔 처음 날로 회귀해 다시 시작하겠지. 그리고 있을 리가 없는 류건우를 찾겠지. 류건우의 몸을 나 역시도 찾아봤지만 그 흔적은 어디도 없었다. 그렇게 신재현은 점점 미쳐갈까. 이 창문 하나 열지 못하는 가냘픈 마음으로. 나는 이제 그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나는 창문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양발은 창가에 못 박힌 듯 서 있으면서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사랑을 믿어요?”

 신재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듯 위태로운 표정이다. 

“이젠 난 믿어.”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빛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제 그림자를 가늘게 늘어뜨려 창틈 사이로 내민다. 도망가지 말라는 듯 애원하는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또 잠시 길을 잃는다. 사랑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 류건우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는 이 사회가 만든 기만적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사랑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배우자가 존재해야만 완벽한 인간이라는 사상을 끝없이 주입받고 있을 뿐이다.

우린 모두 사랑에 속았다. 

사랑은, 없어야만 했다.

 저번의 나는 이 호텔을 빠져나와 외톨이 집단을 모아 호텔에 불을 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난 이제 그때와는 다르니까. 그 입맞춤이 불러온 모든 감정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금방이라도 세상에서 지워질 것만 같은 저 사람을 두고 갈 수 있을까? 불  타는 호텔에 홀로 남아도 있을 리 없는 류건우를 찾아 헤매는 신재현의 얼굴을 떠올린다. 자신이 불타오르고 있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는 신재현을 나는 안다. 

 나 혼자만 알고 있다. 

 신재현은 아무 말 없는 나를 두고 떠나려는 듯 몸을 뒤로 물렸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창문을 열었다. 열린 창문 바깥에서 차가운 숲 냄새가 났다. 멀어지려는 그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당기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거부할 수 없었던 그때처럼, 우리는 짙은 죽음을 예감했지만 지금의 이 입맞춤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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